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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무관심사랑의 양극단

(살레시오 가족지 103호 게재)

 

박은미 |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 심리상담센터 원장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는 인간 관계를 크게 가지, 나와 너의 관계/ 나와 그것의 관계로 나누었다. 번째 관계는 동등한 사람들끼리의 호혜적인 주고받음의 관계인 건강한 관계를 말하고, 두번째 관계는 마치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처럼 지배적·조종적으로 되는 관계, 힘의 불균형을 만들어 갈등을 초래하는 불건강한 관계를 말한다. 흔히 내리사랑이라고 해지는 부모-자녀 관계는 호혜적인 주고받음의 관계이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관계이거나 때로는 지배, 조종적 관계가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후자의 경우 부모-자녀의 관계는 지나친 집착이나 혹은 무관심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드러내면서 다른 한쪽은 무력해지는 상태로 진전되기도 한다.

사례를 만나 보자. 먼저 연세가 70 어머니가 아들 문제로 상담을 청했다. 가족관계의 복잡한 사정으로 힘들어하던 37세된 아들이 6 전쯤 집에서 나가 따로 살고 있는데, 직장생활은 그럭저럭 하고 있다지만 우울감이 심해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한다. 어머니는 혼인도 하지 않고 혼자 우울하게 살아가는 아들 걱정에 탄식이 절로 나오지만, 아들이 좋은 처자를 만나 결혼하게 달라는 기도만 뿐이니, 아들과 소통할 묘수를 찾게 달라는 호소였다.

아들은 휴대전화도 없애고, 원가족과의 소통을 완전히 단절한 상태였다. 뒤늦게 낳은 외아들이었지만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다는 말씀으로 미루어 보건데, 독립하기까지 30년의 시간 동안 심리적으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아들은 가족과 단절하기로 결심을 굳힌 아닌가 싶다. 어머니는 가출했다고 생각하셨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독립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은 여성을 만나 혼인하기를 바라면서 아들 친구가 일에 나서 것을 바라고 계셨지만, 혼인할 당사자인 아들이 과연 그런 어머니의 기도를 원하고 있는지는 없다. 게다가 아들이 지금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지만 좋은 여성을 만나면 나아질 있을 거라는 어머니의 바람은, 아들을 위해 다른 여성에게 모험을 감행하도록 요청하는 일이 수도 있다. 무엇보다 혼인은 혼인할 당사자인 아들이 결정할 일이지, 억지로 시키기에 가장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이 오죽하랴마는, 어머니-아들의 관계에서 일정한 선을 긋는 일이 바람직해 보인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적절한 경계를 두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어머니가 있는 일은 어머니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 그리고 마음이 풀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면 어머니는 언제든 아무 조건 없이 아들을 수용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일 것이다. 아들에 대해서는 주님께 아들의 심신의 건강을 지켜 달라는 기도와 아들이 스스로를 보살피기를 바라는 바람뿐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지나친 애착(집착) 무관심은

사실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인간 행동의 극단적인 양면을 나타낸다.

 

가지 사례는 자녀의 지나친 애착 행동으로 힘들어하다가 상담실을 찾은 어머니의 경우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친구들 사이의 은근한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던 딸이 6학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일거수일투족을 엄마에게 의존하여 친구들 사귀는 일까지 챙겨 주어야 한다는 하소연이었다. 상담실에 오기까지 번이나 상담 일정을 옮기며 어머니는 딸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쓰셨다. 그런데 막상 상담이 이루어져 만나 어머니의 모습은 기대와는 달랐다. 딸의 안위에 전전긍긍하던 그동안의 태도와는 달리, 어머니는 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몸도 약한 데다 직장 생활이 힘겨워 퇴근 후에는 바로 쉬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얼굴엔 피로와 짜증이 가득했다. 상담실에 오자 이제 딸을 누군가에게 위탁했으니 역할은 끝났다는 , 어머니는 한걸음 물러서 버렸다. 아마도 딸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보채고 있었던 아니었을까. 이렇게 자녀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한 부모는 의외로 많다. 사례만 보더라도 자녀에 대한 사랑과 적절한 거리 두기 사이의 균형은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지나친 애착(집착) 무관심은 사실 사랑과 소속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인간 행동의 극단적인 양면을 나타낸다. 어느 쪽이든 건강하지 못한 행동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탯줄은 아이의 출생 이후 며칠이 지나면 떼어 버리지만, 부모나 자녀 어느 한편이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을 여전히 쥐고 있는 경우도 많은 같다. 부모-자녀 관계의 건강성을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관심과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사회 구성원으로 독립하도록 성숙 거리 두기와 냉정한 사랑도 필요 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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