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자살 생각률은 어느 연령대보다도 높다. 청소년기의 정신건강은 이후 시기의 정신건강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 박은미 품 심리상담센터 원장 

 
경제 이익 지상주의의 이면
 2012년 한국 사회의 키워드는 '치유healing'였다고 합니다. 2012년의 긴박한 정치 상황과 맞물려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생명에 대한 시민의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국은 건강과 생명 관련 이슈에 가장 불안한 반응을 보이는 사회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간 자살 사망자가 2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은 성장과 경제 이익 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개발도상국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여 어느 때보다 풍요와 발전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장을 담보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가족 공동체 해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공동체 해체의 최대 피해자는 사회적 대처능력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거나 이미 상실한 약자, 즉 청소년과 노인층일 것입니다. 현격히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자살 시도와 노인의 자살은 가족 공동체의 심각한 해체 실태를 반증합니다.

눈여겨 봐야 할 청소년 자살 생각률
 한국의 자살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저한 증가 추세를 보여 2010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33.5명을 넘었고(2012년 OECD 국가 평균 자살 사망률 12.9명의 3배에 이름), 2005년 이래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려는 청소년층(10~19세)의 경우, 자살은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자살 생각률은 어느 연령대보다도 높습니다. 많은 임상연구자가 청소년기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나 자살 생각을 품었던 사람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성장한 뒤에도 부적응 행동, 정신질환, 자살 행동 같은 문제를 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청소년기의 정신건강은 이후 시기의 정신건강과 깊은 연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는 발달 단계상 심리적,신체적,인지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성과 또래집단에의 소속감, 그리고 도덕적 가치 형성이라는 세 부문의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입니다. 청소년기의 위기이자 발달과제는 '정체성 혼미와 수림'인데, 청소년기에 건강한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일이 앞으로의 삶에서 겪게 될 다양한 실패와 좌절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힘의 원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도움을 주지 못할 경우, 청소년들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실패나 역경에 대해 쉽게 좌절하고 그것이 자기에게만 일어나는 고통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은 곤경에 처하면 쉽고 빠르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충동이 자살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하는 가장 큰 원인은 청소년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 사이에서의 갈등이나 불행(부모-청소년 자녀 관계상의 불화, 부모의 불화, 친구들과의 불화 등)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성적 하락에 대한 비관이 자살 원인으로 밝혀졌다 해도 하락한 성적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성적으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이나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활동과 이혼율 증가 등으로 가족 공동체가 물리적 안전과 정서적인 안정성을 갖춘 사회 안전망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서, 가족이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학습장애, 과도한 컴퓨터 사용 등)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없게 된 것이 청소년 자살을 줄이지 못하는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더욱이 청소년들이 학교폭력, 왕따 등의 연유로 자살한 사고를 접하며 특히 염려되는 부분은 청소년들이 "자신 한 사람 사라지면 모든 문제는 끝난다."며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채 삶을 포기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나 가족 구성원들보다 또래집단에서의 소속감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또래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은 가장 불행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친구를 잃었으니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빠져 청소년들이 조급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청소년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근본적인 '예방'을 위해 해야 할 일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다."는 의미의 '예방'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려면, 자기 생명을 소멸시키는 자살이라는 죽음의 폐해를 지적하는 부정적인 접근보다 삶의 의미와 생명 가치의 존중 쪽에 초점을 두는 접근이 보다 근본적이며 긴요합니다. 스스로의 삶을 놓아 버린 청소년도 지금과는 다른 삶, 아니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랐을 것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품게 하는 사회' 그리고 '좋은 삶'을 구축해 가려는 노력은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과업입니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라 할 것 없이 두 가지 차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기 자신과 이웃의 생명 가치와 존재 의미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차원의 활동으로, 생명문화를 확산시키는 일, 생명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생명 존중의 가치와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지켜 나가는 활동이 전 사회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한 자살 예방은 입에 발린 구호에 그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