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

Lectio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사람들이 안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았다.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이이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그러자 베드로는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하고 부인하였다. 얼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하고 주장하였다.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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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tio

1. 지금 들은 복음 말씀은 수난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편에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 예수님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당신 사랑의 표현을 더 분명히 드러내고 계신다. 인간과 예수님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수님은 수난을 당하시면서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당신을 모른다는 배반의 말을 들었을 때조차 마음 안에 사랑의 공간을 없애지 않으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마지막까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장면을 묘사할 때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고 말한다.

 

2. 우리는 베드로가 설렁설렁 예수님을 따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을 버리고 싶어 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베드로는 제자가 되어 그분을 열렬히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열망에 진정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하고 배신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예수님을 부정하면서 서서히 시작된다. 베드로는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부정한다.

 

3. 우리가 예수님을 한 번 부정하기 시작하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베드로가 두 번째로 부정하는 것은 예수님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하였다. 여기에는 베드로의 강한 자기 신원에 대한 부정이 들어 있다. 이렇게 인간은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의 참된 신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4.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세 번째 단계는 가족들, 형제들, 친구들, 회사 동료와 같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생각, 배려를 점차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삶의 태도가 바뀐다. 주위 사람들이 함께 사랑하고 힘을 나누는 친구이자 형제가 아니라 경계와 경쟁의 대상, 불편한 대상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자기애가 지배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 간다.

또 다른 사람이,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하고 주장하였다.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의 세 번째 부정은 바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부정한 사람들이 하느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고 마침내 이웃까지 잃어버리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5.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신다. 조건 없이 제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 하느님을 보여주신다.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그 외에 아무런 말씀이나 다른 행동이 없었다. 이것은 당신을 배반한 사람과 다시 관계를 맺으시는 하느님의 태도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크고 작은 죄에 대해서, 크고 작은 배반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피조물을 단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심으로써 그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관계를 회복하신다. 예수님은 단지 바라보심으로써 사랑과 연민의 기억을 되살리신다. 상처받은 사랑은 결코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다. 끝까지,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줄 때까지 그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제2의 베드로일 수 있다. 2의 베드로로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금의 상태에서 떠나) 슬피 울 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예수님의 눈과 마주치면서 베드로의 마음은 그를 회개하게 해주는 은총으로 이끌어줄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 베드로와 마주친 예수님의 눈길은 단순한 바라봄이 아니라 베드로의 배반을 치유하고 새로운 관계로 회복하는 눈길이다.

예수님과 눈 마주침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그분의 눈길을 용기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힘들어서, 용기가 없어서 그분의 용서와 사랑의 눈길을 마주치지 못할 때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유다처럼 실망과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 사랑 가득한 눈길, 용서와 연민이 가득한 눈, 나를 믿고 지지하는 그 눈을 바라보지 못하면 새로 출발할 힘을 얻지 못한다. 그분의 따뜻한 사랑과 연민과 자비와 용서의 눈길에 우리 자신을 맡겨보자.

 

성찰을 위한 질문

1. 예수님은 오늘도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신다. 나를 사랑과 신뢰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시는 그분의 사랑에 사로잡힐 용기가 있는가?

2.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항상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도록 맡기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증거이다. 부활하신 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