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열광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하루 세끼 식사를 누구와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설문과 현장 탐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식사 문화를 살펴본다. 
  - 편집부 - 



'먹음'에 열광하는 사회
  근래 각종 매체에서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이 농어촌에서 식재료를
직접 준비하고 하루 세 끼 식사를 해결하는 과
정을 소재로 한 ‘삼시세끼’라는 제목의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이 공중파 방송에서 지난 수년간 시청률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무한도전’의 아성을 누르고 시청률 1위에 등극하는 영예를 누렸다. 음식이라는 소재가 사람들 관심사의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수요미식회’, ‘테이스티 로드’ 등 맛집 관련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웹상에서는 맛집 블로거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프리카,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을 이용한 개인 방송에서도 아마추어 VJ들이 자극성있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을 보여 주는 이른
바 ‘먹방’이 많은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열광적으로 먹는 문제에 몰입
하는 사회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하루 세 끼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그들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음식을 통해 공동체를 배우고 사회성을 익히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이르는 청소년 2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서울 일부 지역의 중고교 및 학원가를 탐방했다. 지금부터 조사와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청소년들의 삼시 세 끼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아침: 가족, 약해지는 식탁 공동체
  전통적으로 먹는 일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공동체는 가족이었다. 가족을 이르는 다른 말
‘식구’食口라는 표현이 식탁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중요성을 잘 일깨워 준다. 특히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간밤에 평안했는지,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아침식사 풍경은 식구로서의 가족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식탁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지위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아침식사를 가족과 함께 나눈다고 답한 청소년은 38.5%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혼자(51.0%) 식사를 하거나, 일부는 친구 및 동료(2.0%)와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 가족이 둘러앉은 아침 식탁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된 듯이 보인다. ‘식구’로서 가족의 위상이 약화되었음은 저녁식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의 59.9%가 저녁식사를 가족과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고 아침저녁 모두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도 41.3%나 되었다. 굳이 설문 결과를 제시
하지 않더라도 팍팍한 삶의 구조 안에서 한 끼 식사조차 함께하기 어려워진 가정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들이 가정을 함께 먹고 생명을 나누는 온기가 가득한 공동체로 인식하는 기회를 과거보다 훨씬 덜 누리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점심 : 또래, 가장 친밀한 식구가 되다
  식탁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지위가 약해지는 반면, 또래 집단은 청소년들의 주요한 식구로 부각되고 있다.
설문에서 ‘함께 식사할 때 가장 편하고 즐거운 상
대는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1.0%가 ‘또래 친구들’이라 대답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중고생의 경우 학교 급식을 하는 관계로 89.7%가 또래와 점심식사를 하는데, 주의할 점은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저녁 시간에도 중고생들이 가장 자주 저녁식사를 하는 대상은 가족(35.6%)이 아니라 친구(39.1%)였다. 또래 집단은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친밀하고 공고한 식구가 되었다. 한편 먹는 일은 또래들 사이에서 문제 해결과 상호 연대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근래 청소년들 사이에
서 각광을 받고 있는 ‘김급식’이라는 모바일 앱이 이런 예를 잘 보여 준다. 2015년 4월 현재 다운로드 수 100
만을 넘긴 이 앱에서는 청소년들이 전국 모든 초 · 중 · 고교의 급식 메뉴 및 여러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급식 식단표를 게시하거나 당일의 급식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다른 학교 식단에 대한 부러움, 비판,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 등을 청소년들의 언어와 재치로 나누는 모바일 기반 식탁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식사
는 또래 집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관계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저녁 : 허겁지겁 외롭게 해치우는 저녁, 식사의 존엄성은 어디로?
  일과를 마친 우리 청소년들의 저녁 밥상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밥상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어
스름한 저녁, 학원가 인근을 가득 메운 청소년들의 모습은 가히 처량하기까지 하다. 바삐 발걸음을 옮기면서 노상 음식점에서 홀로 서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 식탁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다소 불편하게 고안된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한 채 친구와 나란히 앉아 패스트푸드를 후딱 먹어치우고 사라지는 청소년들, 고단한 청년들의 상징이 되어 버린 ‘컵밥’을 먹으며 우울한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위로와 휴식이 되어야 하는 저녁 식사가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긴장감 속에서 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앞서 실시한 설문 응답자의 55.9%는 한 끼 식사를 대체로 15분 내로 마치는 것으로 응답했다. 식사의 풍요로운 의미를 만끽하기에는 턱없이 촉박한 시간이다. 우리의 교육 풍토와 도시 환경은 야박하게도 청소년들에게 식사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학원가 밤거리에서 청소년들에게 ‘먹는 것
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생존을 위해 하는 일이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요.”라는 대답이 주를 이뤘다. 먹음의 보다 풍요롭고 관계적인 의미를 청소년들의 대답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흡입'에서 '식사'로, 다시 세우는 식탁 공동체
  ‘세상만사 먹자고 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먹는 일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의 장이요, 하나의 의례儀禮이자, 문화다. 가톨릭교회가매일 거행하는 성찬례聖餐禮도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먹었던 식탁의 기억
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식탁 공동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식사의 의미를 청소년들은 충분히 체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식사가 의례이자 함께 먹는 사람들과 통교의 장이라는 생각을 갖기에
는 그들의 식사가 너무 빠르고, 너무 외롭고, 너무 험하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먹는 일을 빨아들인다는 개념에서 ‘흡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식사의 의미와 문화를 보존해 온 식구로서의 가족의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적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식사는 홀로, 혹은 친구와 게임하듯 해치우는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드에게 빵과 일과 천국을 약속했다. 여기서 빵은 단순히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탄수화물 덩어리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함께 준비해서 함께 먹고 삻을 나누는 식탁 공동체,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운데 생명의 충만함을 느끼는 일상의 의례를 의미한다. 아무쪼록 우리 청소년들이 밥상을 통해 개인의 생리적 욕구 충족을 넘어 관계를 배우고, 삶을 배우고, 생명을 배우며 먹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 청소년들이 보다 여유 있게, 보다 적합한 장소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하며, 이웃과 함께 먹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