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없이 굴던 한 청소년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 후
고해성사를 보고, 그간의 삶에서 탈피해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게 된 아름다운 실화.
예방교육의 작은 기적을 만난다.


이정은 신부 살레시오회(강원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첫 소임지에서 만난 버거운 청소년

 2011년 사제품을 받은 나의 첫 소임지는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였다. 정들었던 대림동 공동체를 떠나면서 앞으로 살게 될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삻이 기대도 되었지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교차되었다.
 본격적인 기숙사 일이 시작되면서 부푼 기대와 각오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입학식 후 기숙사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사감 수사와 함께 기쁘게 맞이했다. 그때 어디에선가 씩씩 거리며 내뱉는 짜증 섞인 말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말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씨~~!! 그거 엄마가 가지고 오기로 했잖아! 왜 안 가지고 왔어??!! 아! 빨리 가지고 와!! 
에이!!  X나 짜증나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앞으로 저런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할 지 걱정이 앞섰다. 이것이 지우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아이가 짜증 섞인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어머니를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는데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다. 아들의 말 한마디에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눈이 띄었다. 어찌 처음 만나는 책임자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버릇없이 말할 수 있을까? 한마디 쏘아붙이려다 첫 만남부터 싸울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웃으면서 “이곳에 잘 왔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지우에게 해 주고 싶은 내 마음속 말 한마디는 ‘그래 잘 왔어. 하지만 다른 좋은 데도 많으니 기왕 이곳에 온 거 하루 푹 쉬고 내일 잘 가렴!’이었다. 
 살레시안에게 언제나 감동을 자아내며 삶의 징표가 되는 바르톨로메오 가렐리와의 첫 만남. 이 일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살레시안들의 마음에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나 역시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희망과 기도가 자리하기를 꿈꿔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우와의 첫 만남에서, 기도를 바치며 얻은 감동은커녕 엄마에게 보여 준 불경한 태도와 말투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으며, 지우가 천주교 신자라는 말을 듣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음의 대화, 드디어 벽을 깨다

 기숙사 입사 첫날 밤, 서먹서먹한 관계를 없애기 위해 사감 수사와 함께 ‘얼음장 깨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웃으면서 움직이는데 지우는 투덜거리기만 할 뿐 그저 바닥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화가 났지만 애써 웃으며 얘기했다. “지우야! 같이 해야지, 왜 앉아 있어?” “재미 없고 유치해요.” 나를 째려보며 녀석이 답했다. 밖에 나가고 싶었는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잠깐 나갔다오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하지만 일언반구로 “안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온갖 인상을 쓰며 “아~ X나 짜증나. 씨X씨X”거린다. 어이가 없었다. 그 첫날밤, 나는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였다. 
 밤을 새우며 지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어설픈 직감으로 내린 결론은 ‘저 녀석, 오래 못 가겠구나.’였다. 만일 이곳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이야기하면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래? 어쩌니? 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아쉬워서 어떻게해? 하지만 네 뜻이 그러니 어쩔 수 없구나. 그래, 나가서 잘 살아라.’라며 얘기할 회심의 한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직감은 빗나갔고, 지우는 의외로 잘 버티며 지냈다. 그렇다고 직업학교 생활에 적응했다는 것은 아니다. 가끔 있는 외박에도 기숙사에 들어오는 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늦거나 아예 다음 날 들어오기도 하였다. 
 계속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지우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지우의 말을 듣고 지우가 지닌 생각을 알게 되면서, 지우에게 가졌던 편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매일같이 오토바이를 타며 폭주족 생활을 하던 지우. 오토바이 탈 때 느끼는 쾌감은 중독성에 가까워서 오토바이를 타지 않으면 불안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그래서 기숙사에 들어오기가 정말 힘들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그 누구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유롭게 살았으니, 규율을 지키며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우는 수시로 나에게 답답하고 미치겠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러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했으니 그 말은 “정말 여기서 잘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 줘요. 미치겠어요!”였다. 고개를 푹 숙이는 지우를 보면서 이 아이를 끝까지 데리고 가
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물론 속상하게 할 때가 더 많았지만,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
고 바라보기로 했다.

고해성사의 은총을 깊이 체험하며

어느 날 모두가 잠을 자러 침실로 들어가는데 지우가 나를 찾았다. 
 “신부님, 고해성사 볼래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고??”, “고백성사요.” “으응~ 그래! 거실에서 잠시 기다려….”
 순간 불안이 엄습했다. 칭찬해야 할 일이었지만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이니 괜히 긴장이 됐던 것이다. 고해가 시작되자, 지우는 언제나처럼 투덜거리는 말투로 고백을 했다. 듣다 보니 이야기 속의 상황과 그 당시 아이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졌으며 진심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변하고 싶고 잘 살고 싶어 한다는 것, 다만 몸이 잘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 마음이 떠났다면 데리고 사는 것이 힘들었을 테지만, 지우의 마음을 이해한 후로는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이해가 되고 예뻐 보였다. 첫 성사를 보고 나서 지우는 한 학기 동안, 한 달에 두세 번씩 고해성사를 보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 끈을 잡고 줄다리기를 한 적이 많았다. 내가 말을 하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기도 했다. 또한 학교생활에 위기를 겪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우는 열심히 살
려고 발버둥쳤다. 
 잘 살려고 하는 지우의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우선 말투나 행동에 서서히 변화가 왔다. 무슨 말만 하면 말대꾸를 하던 녀석이 내 말 한마디에 “네~” 하고 돌아섰다. 금요일 오후에 외박을 나가면 주일 저녁 복귀 시간에 맞추어 기숙사에 들어왔다. 자신을 닮아 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동생과 함께, 나의 조언대로 산책도 하고 먹을 것도 사 준다며 밝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더 놀랍고 반가웠던 변화는 오토바이를 타는 대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쁨 속에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돈보스코께서 보여 주셨던 아름다운 삶의 유산을 이어 받는 삶인데, 그러한 은총 안에 담긴 놀라운 섭리보다는 인간적인 시선으로만 한 아이를 바라보았으니….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공동체가 함께하며 이룬 예방교육의 결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고 지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학교를 떠났다. 들어올 때 오만상을 찌푸리며 심통 사나운 표정을 보이던 지우가 환히 웃으며 기숙사를 퇴사했다. 졸업할 때 고생한 지도신부를 위해 용돈 10만 원과 도서상품권을 주기로 했던 약속이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10만 원보다 더 큰 재산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졸업 후에도 직장에서 열심히 기계 돌리며 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마음은 금방 부자가 된 것처럼 넉넉해졌다. 
 기숙사에서 보여 주었던 지우의 삶을 회상하면서 아이들과 동고동락 했던 돈 보스코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해를 들으며,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행복해 하셨을 돈 보스코를 상상해 보았다. 그저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배우고 깨우치게 되는 ‘예방교육’의 위대한 승리를 체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우의 삶이 변화한 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게 아니었다. 하느님의 은총과 돈 보스코의 모범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족한 나를 끝까지 믿고 도와주며 지켜봐 주었던 교장 수사님, 지우 때문에 함께 마음 아파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채워 주었던 사감 수사님, 그리고 사랑과 끈기로 지우와 동반해 주었던 동역자분들,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힘을 실어 주며 응원해 준 원장 신부님과 공동체 형제들 모두의 힘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일이었다. 
 지우를 보며 살레시안으로서의 삶에 자신감을 얻었다. 돈 보스코처럼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육법인지 알게 되었다.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간간이 지우가 생각난다. 지금도 성사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지…. 지우가 요즘 어찌 사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지우가 살레시오집에서 체험했던 놀라운 기적의 힘을 지금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으리란 것이다. 언젠가 지우를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끌어안고 한마디 하고 싶다. “정말 네가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오늘도 내 속을 긁는 아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결코 이 녀석들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작은 기적이 일어나서 그 안에 담긴 
보물을 찾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