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스러운 현실에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는 청년들.
두려움과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복음말씀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에 귀 기울이며 본질적인 해법을 찾아본다.

                                                                                                                                           - 편집부 -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작가 민태우너이 읊은 '청춘예찬'의 한 구절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시대의 모는 청춘들도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이상을 품고 자신의 이상이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 여기며, 그 실현에 대한 믿음을 지녔는가? 불안과 불만을 표출하는 청년들의 아우성 '안녕들 하십니까?'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20대 사망의 절반이 고의적 자해(자살)라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통계가 우리의 현실이다. 무엇이 청년들을 불안하게 만들며 그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것일까?

전율스러운 현실
  
 새로운 꿈과 이상을 가슴에 품고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역사문화 발전에 기여해야 할 청년들은 지금 어떤한가? 대다수의 청년들은 사회 안으로 진입 한는 것을 용인받지 못하고 있고, 변두리에서 모든 불안 요소에 둘러싸여 생존싸움ㅇ르 하고 있다. "이것은 전율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 여기 서구에 있는 7500만 청년 실업자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습니다. 수많은 악영향을 수반하는 광범위한 실업 상태를 생각합니다. 진실한 사랑의 부족이라는 공통의 뿌리에서 생겨난, 해석하게도 여러 평태로 존재하는 의존 상황을 생각합니다." 지난 3월 31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살레시오회 총회원들의 알현에서 하신 말씀에서도 그에 대한 걱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시대 청년들의 전율스러운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청년들은 사회 진입을 위해서 혈투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이도록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견고한 장벽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가운데, 이것에서 파생된 전에 보지 못한 현상들을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는 한줄세우기 시스템에 기반을 둔 경쟁교육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타인을 배려하거나 공동체 형성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현상들이다. 

사회 진입의 어려움
  
 취업 준비생 김윤정(27, 가명)씨의 경우 지난해 3월 졸업 후 토익, 토익 스피킹, 컴퓨터 활용능ㄹ겨 자격증을 취득하고, 심지어는 '한국 실용 글쓰기'와 같은 생소한 시험에도 응시했다. 딱히 특정 회사나 직종에 응시하겠다는 마음도 없고 "취업하려면 어떤 자격증이든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청년들은 스펙을 쌓는 일이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라고 믿으며, 심혈을 기울여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덕분에 자격증은 쌓여 가지만 이런 스펙이 딱히 취업의 돌파구를 마련해 주지도 삶의 문화적 질을 높여 주지도 못하고 단지 종이쪼가리에 머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대학 졸업자 10명 중 4명이 사회 진입이 잘되지 않는 여파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니트족(NEET:Not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라 부른다. 구직의 의지는 있으나 일자리를 제공받지 못해 사회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일할 의지도 독립할 의지도 없이 부모에게 얹혀사는 기생 형태의 청년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한 연구를 통해 실업 상태로 취업을 포기한 15~34세 청년 니트족이 2003년 75만명에서 2010년 99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런 의존적 상황의 증가는 본인의 결혼과 가정 및 사회생활, 자녀양육, 부모세대의 노후 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게 된다.
 청년의 원활하지 못한 사회 진입과 의존적 상황은 학생 신분의 연장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서울대와 교육부가 작성한 '2008~2013년 졸업생 등록 학기 수 현황'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대학과 지방 소재 국립대 13개교 23만 4천여 졸업자 중 9학기 등록 후 졸업한 학생은 7만 9천여 명(33.9%), 10학기 이상 등록 후 졸업한 학생은 2만 7천여 명(11.8%)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규정된 학기를 모두 마치고도 졸업을 유예하고 스스로 '5학년'이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대학 졸업자의 30%에 육박하는 비율이 취업보다 대학원 진학을 택해 학생 신분 연장을 꾀하고 있다.

사회성, 책임감?
  
 지난 3월 초 인기 TV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출연자가 돌연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짝'이라는 일종의 연애 서바이벌 게임으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연예프로그램이었기에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이 프로그램은 관찰예능이라는 새로운 포맷인데 일반인들을 출연시켜 6박 7일 동안 폐쇄된 곳에 '모셔 두고' 그들 사이의 이성 상대를 선택하고 짝을 맺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모든 것을 보여 준다. 희생된 출연자는 일거수일투족이 항상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상황에 덧붙여, 짝을 차지하는 경쟁에서 밀리는 것까지 프로그램의 소재로 부각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사회와 대중은 어릴 적부터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아직도 서바이벌의 상황을 강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이웃과 동료에 대한 의심의 눈을 거두지 못하고,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계속 날을 세워야 하며, 모든 이들을 '자신의 적'으로 규정해야 하는 서바이벌의 상황이 현실에도 가득하다.
 청년들의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도 많다. 높아진 학력만큼이나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은 청년 전체가 크게 올라갔다. 이른바 대기업 직원 수준에 맞춰진 안정적인 기대치에 다가가는 길은, 기존 질서의 구조적 문제에 도전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순응력에 있다고 믿는다.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이나 역사적 책무감을 갖고 시대 참여에 적극적인 패기를 발휘했던 앞 세대와는 사뭇 다름 점이다. 
 "어렸을 때무터 스스로의 선택보다 부모에게 의존해 온 청년은 어려움이 닥칠 경우 자꾸만 피하고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행동 향상은 심리학적 '회피 대처'로 비인다."는 권정헤 교수(고려대, 심리학과)의 진단도 있다. 오늘의 청년들은 직면이나 감수보다는 회피를, 몰입도다는 피상적 대응을, 우직함이나 끈기보다는 임기응변의 즉흥적 대응에 더 길들여지게 하는 교육 사회적 여건 속에서 자랐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핵심으로 접근하질 못하고 주변인처럼 겉도는 느낌의 본질적인 소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두려워하지 마라
  
 청년 안에 존재하는 불안은 하나의 씨앗이다. 즉, 인생을 성장시키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극복할 힘과 기회를 제공한다.
 "삶에 대한 두려움, 도전 앞에서의 두려움, 하느님 앞에서의 두려움 등 우리 모두에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갖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을 느껴야 하지만 가질 필요는 없고, '내가 왜 두려워하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청년 불안을 두고 하신 권고 말씀이다.
 누구든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두려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두려움은 마치 미지의 늪과 같아서 청년을 불안의 질곡으로 끌어들이며, 헤어 나지 못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두려움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미래를 조명할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만나도록 이끌기도 한다. 불안을 어떻게 바라보며 대처하느냐에 따라 삶에 좋은 영향 또는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교황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권력, 돈 명예, 등... 혹은 진리, 아름다움 선행의 추구 등... 청년들은 "나의 보물은 무엇인가? 어떤 보물 위에 나의 마음이 머물고 있는가?"를 묻는 이들이다. 즉 자신의 모든 관심이 권력과 명예 그리고 돈이라는 썩어 없어질 보물을 추구하는지, 아니면 참된 진리와 선행에 대한 의지 그리고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분명 청년들은 무엇이 더 큰 보물이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마태오 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부자청년'은 율법에 비춰 반듯한 자신의 삶을 내보이며 "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는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부자 청년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대답은 그를 본질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게 하는 두려움의 상황으로 인도했다.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어던 보물 위에 나의 마음이 머물고 있는가?"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거울삼으며, 예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불안과 두려움으로 빠져들게 하는 썩어 없어질 보물에 마음을 둘 것인가! 아니면 불안을 이겨낼 참된 보물, 즉 진리와 선행에 대한 의지 그리고 아름다움에 마음을 둘 것인가!